Being a Storyteller

압축소설 - 1

2009. 4. 6. 22:57

1.

“사망 소식입니다. 오늘 낮 4시 15분쯤 서울시 관악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평소에 우울 증세가 있었던 대학생 20대 이 모 씨가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을 이웃 한 모 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사인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보이며,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따르르르릉

TV에서 정신없이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멘트를 잘라낸 것은 휴대전화 벨소리였다. 산지 얼마 안 된 휴대폰이라 아직까지도 전화가 오면 가요가 아닌 기본 벨소리만 외쳐대고 있다. 원래 연예계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평소에 쓰던 벨소리가 단순한 알람소리로 바뀌니 무언가 이질적이라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벨소리를 바꾸어야겠군, 이라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들었다.

“정재연 박사님, 이정훈 군이 자살했습니다.”

“뭐?”

“이정훈 군이 자살했습니다. 오늘 세시 반 즈음, 손목을 그은 것 같습니다.”

이정훈은 내가 직접 지도했던 학생이다. 그렇다면 뉴스에서 수다거리로 떠들어대고 있는 저 이 모 씨가 이정훈 군이란 말인가? 머리가 아찔하다.

“알았다. 나중에 다시 연락하지.”

조용히 휴대폰을 내려놓고, 앉아있었던 자리에 다시 앉으며 생각해 보았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밝은 표정으로 토론하러 왔던 학생이었다. 무엇이 그 학생을 12시간 만에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일까? 우울증세가 있었다는데, 평소에도 가끔씩 보이는 그 쓸쓸한 눈빛은 우울증보다는 향수에 가까웠다.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2.

축복받은 천재들의 땅. 2020년의 대한민국은 유난히도 천재들, 특히 과학의 화신들이 많이 태어나는 곳이었다. 길거리의 10세 정도 되는 아이들 셋 중 둘 이상은 암산으로 적분을 할 수 있었으며, 열 명 중 하나는 기초적인 미분방정식을 풀 수 있었다. 물론, 이 천재들이 천재로 자라난 것인지 천재로 태어난 것인지는 아직 논란거리이다.

하지만, 그 축복은 저주로 돌아오고 있었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들이-물론,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만 명 중 한 명꼴, 많이 잡으면 천 명 중 한 명 꼴의 인재이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로 진학하게 되는 경우 대개 3년을 못 가 자살하고 말았던 것이다.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은 청년들은 대부분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폐인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천재들이 태어나지만 그 중 단 하나도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땅. 2020년의 대한민국에서 9차 교육과정이라는 터널 속을 살아 통과하는 천재들은 없었다.




3.

“인재가 없어요, 인재가!”

남자의 말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깟 학교생활이 뭐가 힘들다고 우울증에 걸리느냔 말이야! 국가에서 장학금 퍼주는 것이 호강시켜주려고 그러는 것인 줄 알아? 지네들만 힘들어? 응? 나도 힘들어 죽겠단 말이야!”

남자가 내려친 주먹의 충격은 책상을 뚫고 지나 머그컵 속의 녹차와 함께 공기 중으로 비산하였다. 떨어지면서 머그컵 속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 녹색 물방울들은 결국 컵 아래에 놓여있던 보고서에 내려앉고 말았다.

보고서에는 어제 자살했던 한 대학생의 사진이 녹차와 함께 흩어지고 있었다. 이정훈. 놀라운 속도의 배움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커서 무엇이 되어있을지 궁금한’ 학생이다. 아니, 학생이었다. 지금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관 속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이 분노의 장면을 보다 못한 여자가 말을 꺼냈다.

“김 장관님, 이건 교육과정의 문제 아닐까요?”

김 장관이라고 불린 남자는 잠시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자기의 주인을 따라하려는 듯 책상 위에 놓인 홀로그램 명패 속 김한종이라는 글자도 여자를 돌아보았다.

“유 차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현재 자살로 죽은 인재들은 하나같이 수학, 과학 능력에서 탁월한 성취도를 보여왔던 학생들입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이과적 능력의 발달 속도를 인문학적 소양의 발달 속도가 따라잡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결국 사람이 가장 크게 휘둘리는 것은 과학보다는 감정과 좀 더 맞닿아있는 인문학일 텐데, 이런 인문학적 소양이 과학적 지식의 발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우울증에 걸리고 결과적으로 자살로 삶을 불태워 버리거나, 아니면 남아서 시체와 같은 삶을 사는 것 아닐까요?”

“음...”

김한종은 눈을 감았다. 아까와는 달리 매우 차분해진 숨소리는, 그가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음...

한번 시작은 해 보지요... -_-;;

연재는 아닐 것 같고, 한 서너번 정도 더 쓰고 결론을 맺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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