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문제는 교육입니다.”
TV 토론 프로그램의 한 패널이 말했다. 진행자의 뒤에서는 ‘9차 교육과정,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글자가 떠다니며 이날 토론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었다.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진 그는 다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교육이 인재들의 미래를 밝혀주어야 하는데, 지금 그것이 안 되고 있어요. 한마디로 꿈이 없는 십대라는 겁니다. 별 없는 하늘을 나침반 삼아 나아가려니, 그게 안 되어서 결국 좌절하고 마는 것이지요. 지금 중요한 것은 우울증 치료가 아니라, 우울증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에요.”
“동의합니다. 지금의 십대에게는 도전할 이상이 없어요. 도전할 거리가 없으니 패기도 없는 것이고, 패기가 없으니 삶을 쉽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십대들에게 목표를 심어줄 수 있을까요?”
사회자의 질문에 열띤 분위기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여기 모인 모든 논객들은 최소한 하나의 의견은 공유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이 나아갈 이상향을 잃어버렸다는 것. 하지만 이 잃어버린 대륙을 나침반도 없이 항해중인 학생들에게 어떻게 찾아 줄 것인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했다. 아니, 한 사람은 알고 있는 듯했다. 무거운 침묵을 깨고,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현재의 교육과정을 한번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부 장관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솔직한 생각을 말씀 드리자면, 9차 교육과정은 인문학보다는 자연과학에 중점을 두도록 계획되었습니다. 이런 집약된 교육과정이 뛰어난 인재를 육성해 내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인재들은 다 자신의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자연과학에 과도하게 집중된 교육과정의 문제라고 봅니다. 사람은 수식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문학, 예술 등 이성이 아니라 감성을 키우는 교육과정이 절실합니다. 이런 감성을 키울 기회를 상실했기에, 수많은 영재들이 제 꽃을 피워보지 못하고 나락으로 추락해버린 것 아닐까요?”
한종은 잠시 말을 끊었다. 논객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이다. 또, 그는 이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오히려 속이 타는 것은 상대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잠깐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 끝에 진행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김한종 장관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떤 해답을 가지고 계신가요?”
“집약된 감성교육입니다.”
5.
10차 교육과정, 또는 집약된 감성교육에 대한 논란은 뜨거웠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교’만 쳐도 연관 검색어로 10차 교육과정, 감성교육 등 교육과 관련된 검색어가 무수히 떠올랐고, 조금이라도 관리되고 있는 사이트들은 어김없이 새로이 시도될 10차 교육과정에 대한 글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체적인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영혼을 구성하는 두 부분 중 하나를 잊고 살았던 과거’라면서 과거의 자연계열에 집중된 교육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인간성을 잃어버리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다’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교육 시장은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전문 강사들이 모여 꾸려진 ‘10차 교육과정 꿰뚫어보기’라는 강연은 표가 모자라 암표까지 나도는 상황이었다. 출판사들은 새로 찍어내야 할 교과서에 실을 내용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소설가들은 교과서에 자기의 소설 한 문단이라도 실어보기 위해 출판사 편집장을 분주하게 찾아다녔다. 식품업체에서는 ‘감성을 길러주는 비스킷’, ‘감성 먹고 자란 감자’ 등의 감성적인 과자들을 쏟아내면서 감성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이 감성마케팅이란 열풍은 감성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곳까지 불어서 ‘자녀를 위해 선택하세요. 감성을 길러주는 좌석을’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자동차 시트 광고까지 나타났다.
감성 문제는 학회에서도 화제였다. 대부분의 사회과학학회에서는 이를 반기는 눈치였다. 그간 연구지원비가 죄다 공학계열의 학회에만 지급되었던 터라, 돈이 궁하던 학자들에게는 더 이상 반가운 소식이 있을 수 없었다. 이공학계열의 학회에서는 연구지원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으나, 노령화되고 있는 학회 상황을 고려할 때 새로운 피를 수혈 받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들고 나선 건 발달심리학회뿐이었다. 이 문제는 인문학적 소양이 공학적 소양을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두뇌에 무리하게 많은 지식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그렇지 않아도 굶는 사람이 많은 학회가 적극적으로 내기에는 너무나도 급진적이었다. 결국 학회는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에서 그치도록 하고, 연구비를 지원받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시대적인 흐름이 모두에게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PC방과 같이 아이들이 주 고객이었던 장사는 9차 교육과정에 맞추어 바꾸었던 실내를 다시 갈아엎어야 할 상황이었다. 잔인성과 폭력성의 대명사로 전락해 버린 게임업계는 좀 더 감성적인 여가거리로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만화시장에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감성적인 게임을 잇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한번 떠나기 시작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6.
“교육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10시 30분에 ‘10차 교육과정 연구원’의 발족식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시도되는 10차 교육과정은 지금까지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완전한 감성을 지닌 인간상’에 대한 대대적인 보완이 이루어질 전망이며...”
아나운서의 맑은 목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깔린 죽음 같은 침묵을 조금이나마 몰아내고 있었다. 이 목소리라도 없었다면 얼어버린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겠지.
그 녀석의 장례식에 다녀온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나간 사람을 잠깐 동안 떠올렸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미 시계 바늘은 한 바퀴 돌아간 후였다.
“제기랄. 왜 죽고 지랄인데...”
여러모로 신기한 녀석이었다.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의외의 구석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곤 했었다. 한 번은 수학 시간에 그랬던 적이 있다.
“왜 적분은 미분을 반대로 하면 얻어지는 것일까?”
물리를 좋아했던 그 녀석은, 혼자서 이상한 원서를 들추어 보곤 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물리 책을 혼자 공부하면서 더불어 미적분까지 독학했다고 한다. 그런 녀석이 나는 들어 본 적도 없는 미분과 적분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었고, 난 얄팍한 자존심에 ‘알지만 너같이 멍청한 놈한테 알려주지는 않을 거야.’고 약 올렸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 녀석은 수학책을 이곳저곳 뒤져보더니, ‘미적분학의 기본정리’라는 다소 딱딱한 제목의 설명을 찾아내었다. 그 때의 그 웃는 얼굴, 온 세상을 얻은 듯했던 미소가 너무나도 기억에 남는다.
“흥”
슬픈 눈으로 웃고 있는 나를 거울 속에서 발견하자마자 거울 속 미소는 자취를 감추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분노는 장례식장에서 증오로 변해 있었고, 집에 올 때에는 원망이었다가, 점차 하루하루 지나면서 한이 뒤섞인 허무감으로 바뀌어 갔다. 이제 일 주일. 당시까지만 해도 온 몸을 흔들어대던 강렬한 감정은 몸에 남아있는 모든 기력을 앗아가는 것으로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남겨두려 하고 있었다.
2,3년 전부터 영재들의 계속된 자살은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왔었다. 아무리 흥미 위주로 짜깁기된 쓰레기 신문이더라도 청년 자살에 대한 글 하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주 까지만 하더라도 그 문제는 나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문제였더라도 내가 자유로워진 이상은 날 옭아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난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녀석의 죽음은 나와는 동떨어진 줄만 알았던 사회 문제를 내 삶의 한가운데로 가져다 놓았다. 아니, 정중앙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 주위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 문제’로 바꾸었다. 원래 머리 아픈 문제는 싫어하는데 말이야...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 속 교복의 명찰에 달린 이정훈이란 글씨가 오늘따라 슬퍼보였다. 갑자기 입이 제 혼자서 움직이더니, 조용한 한 마디를 꺼내었다.
“개새끼...”
사진 속의 박연철이라 쓰인 명찰이 울고 있었다.
본격 디스토피아 대한민국 2020의 시작입니다.
마지막은 약간의(?) 현실감을 위해 비속어 처리를 조금(?) 했습니다.
이쯤에서 퀴즈(?) 나갑니다. 압축소설이 뭘까요?
(쓰고보니 혼잣말 같군요 OTL)
아 그리고 밥먹자님 댓글 감사합니다 ^^;; 여기는 제가 댓글을 안 다는 것을 원칙으로 해서요;;;